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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글/겨울이 끝이 났다

結了



그렇게, 우리의 계절이 끝났다.










친애하는 너에게.

 

 꽤나 많은 시간과 계절을 거쳐 봄이 왔다. 이 봄은 우리가 처음맞는 봄은 아닐 것이다. 스무번을 넘긴 봄날 중 하나이지만 그래도 오늘의 봄날은 나름, 괜찮은 봄날이란 생각이 든다.

 

 티어넌의 영지엔 어린 풀이 자라났다. 메말랐던 가지가 물을 머금고 살아나서, 새잎을 피웠다. 드문드문 목련봉우리가 보이는 것이 조만간 꽃을 피워 하얗게 일어날 듯 싶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겠지. 아, 봄이 왔구나- 하고. 아마 네 영지에도 풀이 자라나고,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들겠지. 그러한 봄이다.


 언젠가 너가 어떠한 느낌인지 물었을 때 나는 긴 풀이 자라난 초원이 바람에 의해 넘실거리는 모습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제와 조금 더 덧붙여 말하자면 너는 그 초원에 홀로 서있으면서 똑바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리저리 노력해도 어떠한 부분에서는 눈치와 생각이 부족한 탓에 아마 나는 네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모를 것이다. 그저 너를 따라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와 같은 안일하고도 확실하지 않은 기대를 품고 내 멋대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 결과라 생각한다.


 나는 이 결과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록 시작은 최악으로 시작했을 지 몰라도, 끝맺음도 최악으로 끝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내가 너에게 친애하는- 이란 어울리지도 않을 법한 문구로 이 글을 시작하여도, 이젠 제법 나름 봐줄만 하지 않았는가. 오늘도 여상히 적는 혼잣말에 나는 이렇게 적어보려한다. 


우리의 악연은 끝이났다- 라고. 


 록시 애너톨과 아이베르크 티어넌의 악연(惡緣)을 끝내보고자 한다. 우리는 끝이난거다. 꽃피는 봄날이 무색하지만 우리의 연을 끝맺음하자. 우리가 저지르지 않은 일도, 그렇기에 우리가 떠넘김받아 속으로 품고 있던 일도, 속으로 품고 있었기에 그어놓았던 선도 이 계절과 함께 끝내자. 

...


 그러니, 그렇게 끝내고 지금처럼 아무것도 아닌 상태처럼. 우리 사이의 공백처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거리처럼 나아가보자. 어릴 적의 처음 만남으로부터 인연(因緣)을 끄집어내 서투른 번명처럼 붙여도 좋다. 뭐든 좋으니까.

 그저 봄이 온거다. 모든 것이 끝나는 봄이. 나에게는 쉬어가는 계절이. 나의 시작은 언제나 여름이었어서, 봄은 언제나 끝나는 계절이어서. 


..

.

.


...친애하는 록시 에너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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