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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글/겨울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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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害木 https://youtu.be/3qyrg9XxN7U 겨울은 찾는 이가 없어도 영지를 방문했다. 손님은 어김없이 양팔 가득 눈송이를 가져와 뿌려두었다. 그러한 탓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이여, 이곳의 날씨는 영하. 폭설이 내리고 있다. 겨울이 되면 티어넌의 영지에선 다양한 소리가 들려왔다. 얼어붙은 호수 아래서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음을 알리는 미약한 물소리와 호수를 둘러싼 나무들이 눈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사슴무리가 눈을 밟아 풀을 찾아가는 소리,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스튜가 끓는 소리, 한 사내가 장총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는 소리- 록시 애너톨은 티어넌의 저택에서 오랜 시간을 머문 자다. 처음엔 창문을 타고 들어온 불청객으로, 다음은 소파의 자리를..
장미 정원은 오늘도 만개하여 향기가 진하고 아름답습니다.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차오른 방 youtu.be/dPRYEZx01qU 새벽의 평안을 바라며 당신에게 인사를 건내요 안녕, 안녕. 방은 더 이상 비어있지 않았다. 넓은 방과 존재하는 것은 시계, 책상, 침대, 두 사람 시계소리가 밤의 손님을 맞이했다. 여전한 침묵으로 방을 채우고 달라진 무게로 감싸안으며 창문과 문 틈 사이로 비집고 나가 존재감을 알려 두 사람의 일정한 호흡이 규칙적으로 오르고 내려가며 온기를 채우고 차기만 했던 방은 무언의 행적으로 덧칠해져갔다. 시퍼런 새벽이 잠든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나는 고요함이며 나는 너희의 안녕을 바라며 나는 너희에게 인사를 건낸다. 소란스러운 침묵이 방안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Si c'est l'amour qui ne change pas 그럼에도 나는 네 말에 안도해 달그락. 찻잔을 내려놓는다. 고요한 정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말의 울림으로 미약하게나마 존재를 내비치고 있던 두 사람의 존재도 장미꽃의 향기에 파묻혀 희미해졌다. 아이베르크 티어넌은 감았던 눈을 뜨지 않은 채, 입엔 미소를 유지한 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변치 않는 것을 사랑이라 함은, 네가 날 싫어하는 것도 변치 않으니 이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어찌 보면 참 철학적이면서도, 록시 애너톨이란 사람이 물어볼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이어온 오해와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과거에서 생긴 반사적인 생각일 뿐, 아이베르크는 네가 하는 질문을 이해했다.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사랑은 변치 않는 것인가? 사랑은 어째서 변하지 않는 것이..
結了 그렇게, 우리의 계절이 끝났다. https://youtu.be/BTVe7eYay3U 친애하는 너에게. 꽤나 많은 시간과 계절을 거쳐 봄이 왔다. 이 봄은 우리가 처음맞는 봄은 아닐 것이다. 스무번을 넘긴 봄날 중 하나이지만 그래도 오늘의 봄날은 나름, 괜찮은 봄날이란 생각이 든다. 티어넌의 영지엔 어린 풀이 자라났다. 메말랐던 가지가 물을 머금고 살아나서, 새잎을 피웠다. 드문드문 목련봉우리가 보이는 것이 조만간 꽃을 피워 하얗게 일어날 듯 싶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겠지. 아, 봄이 왔구나- 하고. 아마 네 영지에도 풀이 자라나고,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들겠지. 그러한 봄이다. 언젠가 너가 어떠한 느낌인지 물었을 때 나는 긴 풀이 자라난 초원이 바람에 의해 넘실거리는 모습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
丹楓 https://www.youtube.com/watch?v=_dYADU6TLJI 너를 볼 수 없는 가을이 왔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계절을 보냈더라. 장마철이 끝나고 해가 아플듯이 따갑다가, 어느순간 날이 선선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시점이 오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켭켭히 쌓아올려진 푸른색을 선히 볼 수 있었다. 텁하고 습했던 바람이 가볍게 바뀌어 해가 지면 알싸한 추위를 일으켰다. 호숫가 주변의 갈대들이 초록빛에서 황금색으로 변한다. 부들가지들은 색이 조금 변한다. 밀들이 고개를 숙인다. 늘 푸를 것 같았던 나무들이 노란색으로, 붉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꽃들은 천천히 져서, 씨앗을 발아할 준비를 한다. 호수에서 한가로이 노는 사람들은 이제 없다. 모두가 농작지로 돌아가 수확의 준비를 서두..
비어있는 방 https://youtu.be/mOnCohfGKtE 적막과 어둠이 공간을 채우면 우리 사이엔 침묵만이 남는다 밤을 달려온 새벽이 공기를 서슬퍼렇게 물들인다. 바깥과 연결되지 않은 방 안 쪽도 시퍼렇게 물들어갔다. 아이베르크는 해가 뜨기 전, 자신의 방이 꼭 물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 속. 호수 속이든 자주 가보지 못하는 바다 속이든 -꿈에서는 자주 가본 편이지만- 축축하고 침울하고 끝도 없이 떨어질 것 같다는 느낌. 숨을 쉴 수 있는 물 속이 있다면 이러한 느낌일 것이다.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는 뒤척거린다. 눈 아래가 검다. 한숨을 내쉬지만 이내 아파오는 머리에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눌러댄다. 오늘은 아이베르크 티어넌이 잠에 제대로 들지 못한 지 대략 이주일 정도가 지난 날이다. 이유없는 ..
Non livrable https://www.youtube.com/watch?v=kcqacPpnndA 친애하는- 같은 따위의 말들이 써있다가 지워진 흔적이 보인다. 쭉 그어진 까만 선 아래로 다음과 같은 말이 써져있습니다. 몇 날을, 몇 일을 잠들어 있는 ■ ■ ■ ■ ■ 에게. 늘 깨어있던 네가 무슨 변덕이 들어 잠에 빠진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난 날입니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잠들어있는 너는 어느 곳을 여행하고 있습니까. 같은 꿈을 꾸었던 그 때 처럼 바다 속도, 바다 위도, 하늘도, 구름도 아닌 곳을 거닐고 있나요? 그곳은 계절의 변화가 있나요. 그곳은 이 곳처럼 푸른 잎이 지고, 나뭇잎이 붉게 물들고 떨어지며 새하얀 서리가 내리고 있나요. 나는 당신이 잠든 모습만을 하염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