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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글/겨울이 끝이 났다

비어있는 방




https://youtu.be/mOnCohfGKtE




적막과 어둠이 공간을 채우면 우리 사이엔 침묵만이 남는다






 밤을 달려온 새벽이 공기를 서슬퍼렇게 물들인다. 바깥과 연결되지 않은 방 안 쪽도 시퍼렇게 물들어갔다. 아이베르크는 해가 뜨기 전, 자신의 방이 꼭 물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 속. 호수 속이든 자주 가보지 못하는 바다 속이든 -꿈에서는 자주 가본 편이지만- 축축하고 침울하고 끝도 없이 떨어질 것 같다는 느낌. 숨을 쉴 수 있는 물 속이 있다면 이러한 느낌일 것이다.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는 뒤척거린다. 눈 아래가 검다. 한숨을 내쉬지만 이내 아파오는 머리에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눌러댄다. 

오늘은 아이베르크 티어넌이 잠에 제대로 들지 못한 지 대략 이주일 정도가 지난 날이다. 


 이유없는 불면증이 찾아왔다. 불면증은 워낙 평소에도 자주 있었고, 일시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쉬거나 약을 처방받아 먹으면 괜찮아 질 것이라 생각하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이번 건 달랐다. 이주나 지났지만 나아질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잠에 드는 시간은 불규칙한데, 아침에 깨는 시간은 언제나 일정하다. 잠을 자기 위해 여러 방안을 생각해내고 해보았지만 도통 잠들지 못했다. 어쩌다 잠이 든다 하더라고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의 짧은 잠을 자고, 깨는 것이 전부였다. 얕은 잠은 사람을 더 피곤하게 만든다더니, 최근 들어 아이베르크는 수척해졌다 느낄 정도였다. 해야할 일이 많지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몸은 사람을 신경질적이고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불가하게 만들며, 인지능력을 떨어뜨린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식사를 하는 내내 정신을 어딘가에 두고온 기분이었고 물을 마시던 컵을 놓치기도 했다. 평소에는 넘어갈 법한 사용인들의 실수에 약간의 짜증을 부렸고, 자신을 부르는 록시의 말을...

...

..

.


넌 언제온거야? 


 ...록시 애너톨이 티어넌에 온 것은 한 시간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오늘은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집사와 실랑이를 하느라 오십 여분 정도를 소모했다. 늙은 집사는 오늘 주인의 상태가 매우 좋지 못하고, 자신과 의사소통도 잘 안되는 편이니 괜히 대화했다가 답답해질 수 있으니 '정중하게' 돌아가기를 청한 것이다. 하지만 둘의 뒤로 아이베르크 티어넌이 나타나면서 짦으면서도 소모전이었던 대화는 중단되었다. 록시 애너톨과 집사는 동시에 아이베르크 티어넌을 불렀지만 아이베르크는 반응하지 않은 채로 묵묵히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고, 이를 보고 있던 록시가 아이베르크를 연달아 불렀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참다 못한 록시 애너톨이 아이베르크 티어넌을 붙잡으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제서야 록시가 왔다는 것을 눈치 챈 아이베르크는 록시의 앞에서 눈을 굴리며 시선을 피하고 있었지만.

 잠을 못잤다던데. 상대는 아마 그러한 의도가 없었겠지만 아이베르크는 그 말이 이상하게 따갑게 들렸다. 이 나이를 먹고도 혼나는 어린애의 기분을 느낄 줄은 누가 알았을까. 불면증이 왔어. 그러한 기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듯, 무표정을 유지하게 위해 무던히 노력하며 대답한다. 왜? 그 물음엔 자신도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애초에 이유를 알았으면 불면증을 해결하고 푹 잠에 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들은 탓인지 예민해진 신경이 제 앞의 사람에게 향한다. 그렇지만 앞에 있는 이가 록시 애너톨인 것을 깨닫자 도로 가라앉았다. 뚱한 얼굴로 한참 록시를 보았다. 가끔 생각하는 거지만 어쩌면 제일 이상한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일지도 몰랐다. 

 그 후론 시시콜콜한 대화가 이어졌다.


 머리는 왜 자른거야? 무거워서. 일은 하고 있는건가? 당연한 것을 묻네, 다른 질문 해봐. 요즘 몸은? 누구 덕에 건강해. 그럼 다행이고. 그래. 왔으니까 저녁이나 먹고 가. 힘들게 왔잖아? 록시가 그 말을 듣고 무어라 대답을 한 것 같았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말을 하긴 한건가.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록시가 긴 잠에서 깨어난 이후 둘의 대화는 길지 않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아이베르크는 침대에, 록시는 소파에 앉아 대화했고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거리 뿐일까, '공백'이 생겨 채워지지 않았다. 이 공백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멈춰선 것이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겠어서. 사실 자신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 지 조차 제대로 확신이 서지 않으니 어찌 판단을 하겠는가. 무엇을 불안해 하는지도,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조차 잘 모르겠어서-

 

 ...아이베르크. 아이베르크!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다. 알 수 없는 표정의 록시 애너톨이 자신을 보고 있다. 아무래도 또 멍해진 채 앞만 보고 있던 모양이다. ...록시, 미안하지만 나 잠을 좀 자야겠어. 잘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가만 그 말을 듣고 있던 록시가 방 안의 커튼을 모두 쳐버린다. 분명히 낮인데, 밤이 온 것 마냥 어둠으로 가득찼다. 뭔가 말을 하려 해보지만 몸을 웅크리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걸로 대신한다. 잘 보이진 않지만 록시도 소파에 누운 것인지 이내 방 안은 적막이 자리잡는다. 사람이 둘이나 있는데,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와 나의 거리가 비어진 듯 비어지지 않는 것으로 채워진 것 처럼, 우리도 존재하지 않는 듯 존재한 것이 되어버린 걸까. 우리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까. 

 ...색색. 고른 숨소리가 존재감을 일으킨다. 잠시나마 이 방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정작 자신은 뜬 눈으로 몸도 뒤척거리지 못한 채 웅크려있지만 말이다. 규칙적인 소리는 이내 침묵으로 어우러진다. 본래 있던 것 마냥, 일부분이었던 것 마냥 적막의 일부분처럼 자리잡는다. 만들어진 새벽이 찾아왔다. 눈을 감고 자신 역시 적막의 일부분이 되어본다. 

본래 있던 숨소리와 엇박자로, 누군가 숨을 쉬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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