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성글/겨울이 끝이 났다

Non livrable



https://www.youtube.com/watch?v=kcqacPpnndA 








친애하는- 같은 따위의 말들이 써있다가 지워진 흔적이 보인다. 쭉 그어진 까만 선 아래로 다음과 같은 말이 써져있습니다.


 몇 날을, 몇 일을 잠들어 있는  ■ ■ ■ ■ ■  에게.


  늘 깨어있던 네가 무슨 변덕이 들어 잠에 빠진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난 날입니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잠들어있는 너는 어느 곳을 여행하고 있습니까. 같은 꿈을 꾸었던 그 때 처럼 바다 속도, 바다 위도, 하늘도, 구름도 아닌 곳을 거닐고 있나요? 

 그곳은 계절의 변화가 있나요. 그곳은 이 곳처럼 푸른 잎이 지고, 나뭇잎이 붉게 물들고 떨어지며 새하얀 서리가 내리고 있나요. 나는 당신이 잠든 모습만을 하염없이 보고만 있습니다. 

 당신이 잠들어 있는 모습은 무서울 정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당신은 마치 얼어붙은 수면 아래 잠들어 있는 기분입니다. 나는 가끔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처음엔 한 번, 가끔은 수십 번을 부릅니다. 대답을 바랍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것이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처음엔 희망이었을지도 모르겠고, 그 다음은 내 멋대로 건 기대입니다. 그렇지만 이젠 그 어떠한 것도 부질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나는 당신에게 꽤나 많은 기대를 걸고 접었습니다. 당신과의 관계가 나아지길 바랬고, 당신의 성격이 괜찮아지기를 바랬습니다. 당신이 건강해지길 바랬고 당신이 행복해지길 바랬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나를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네가 나를 미워하지 않고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네가 나에게 퍼붓는 미움은 나에겐 있어 독(毒)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인정합니다. 나는 네가 스쳐지나가는 바람같은 존재일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인정합니다. 어떠한 계절에도 너는 있었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리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계절의 일부분이 너라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너는 네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나에게 지독한 여흔을 남겼습니다. 독에 중독된 사람이 그에 대한 휴유증을 가지고 살듯 나는 그렇게 변한 듯 합니다.

 네가 나에게 미움을 퍼부을 수록 나는 지쳐갑니다. 나는 점점 지쳐갑니다. 틈새 하나 없던 벽에 내가 자꾸만 금을 내어서, 너가 미워지고 싫어지게, 가끔은 너에게 똑같이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리석고,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자꾸만 그러한 생각이 듭니다.


 너는 잠들어있고, 나는 더 이상 지쳐야 할 이유가 없는데 왜 이리 지쳐가는 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이 옵니다. 이번 겨울은 너에게도 나에게도 혹독하겠죠. 나는 그 어떠한 겨울보다 지독하게 아플 겁니다. 


그리고 그 이유엔, 네가 있을겁니다. 


 이 편지는 전달되지 않을겁니다. 수신인을 적지도 않았으니까요. 전달되어선 안됩니다. 그러니 이 편지는 나 혼자의 독백(獨魄)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이 편지는 잠든 네 앞에서 조차 차마 말로는 털어놓지 못하는 어느 이상한 사람의 독백으로 남겨두려 합니다. 


...이만 편지를 줄입니다.



 수신인도, 발송인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구겨진 듯한 편지만이 봉투에 곱게 담겨, 시들어버린 꽃과 함께 동봉되어 있습니다.

'연성글 > 겨울이 끝이 났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丹楓  (0) 2021.01.13
비어있는 방  (0) 2021.01.13
Monologue  (0) 2021.01.13
숨이 멈추는 이유에 네가 있다면  (0) 2021.01.13
晩冬  (0) 2021.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