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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글/겨울이 끝이 났다

晩冬





::https://www.youtube.com/watch?v=wIhfU8Woci4 ::




호수에서 다시금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았던 얼음이 녹아내렸다. 완전히 녹은 것은 아니지만, 이젠 귀를 귀울이지 않아도 호수의 아래에서 물이 흐르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호수의 얼음 위로 올라가는 것을 멈추었다. 힘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깨지는 얼음과, 깨진 얼음에서 자박히 흐르는 물을 보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아, 늦겨울이구나. 겨울이 끝나간다. 우리의 하얀 계절이 끝나간다. 

 그리고, 티어넌 저택은 생기가 돌았다. 겨울이 끝나가는 것을 알아차기라도 한 듯, 시퍼런 계절 아래 죽은 듯이 누워만 있었던 어린 가주가 몸을 일으켜 저택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입술은 겨울과 입맞춤이라도 한 것 마냥 핏기가 없었고, 얼굴엔 아픈 이의 피로가 가득했지만 그가 내뱉는 목소리는 열에 들끌어 갈라지는 목소리가 아닌, 따듯하고 습기가 찬 봄을 기다리는 목소리었다. 

 

 내가 누워있는 동안 별 일 없었어? 아이베르크는 늙은 집사에게 물었다. 그의 옆에는 말린 국화로 우려낸 차가 담긴 찻주전자가 놓여있었다. 제법 맛이 있던 것인지 꼴깍, 꼴깍 들이킨다. 아예 자신이 차를 직접 따르기까지 한다. 그 모습을 본 늙은 사용인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주인에게 고했다. 사실, 애너톨님이 다녀가셨습니다. 지금 드시고 계신 국화차도 그 분의 방문 선물이었습니다. 아이베르크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당황한 듯, 집사에게 되물었다. 록시가 다녀갔다고? 혹시, 내 방에 들어오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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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사용인의 대답은 '아니요' 였다. 애너톨이 아이베르크를 보겠다며 고집을 부렸지만 티어넌 가의 집사로써 주인의 건강을 위해 돌려보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아이베르크는 그 말에서 모순을 느꼈다. 


그렇지 않은데, 그 날, 그 때. 분명히 누군가 자신의 방에 들어왔는데.

 열이 펄펄 끓어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날, 서늘한 바람과 함께 아이베르크는 제 이마를 만져주는 손길을 느꼈다. 손길이 닿을 때마다 열이 조금씩 내려갔다. 어디서 왔길래 이리 차가운 손을 가졌을까. 너 역시 이곳 만큼이나 눈이 내리는 곳에서 온 건가? 눈을 떠보려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수마가 눈꺼풀을 덮어준다. 아니야, 보지마.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거란다. 그리 속삭이는 듯한 환청도 들렸다. 아픈 이는 열을 식혀주는 손짓에 의지한 채 보다 편안한 잠에 들었다. 쉬어, 아이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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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환청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아이베크르는 국화차를 마시며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제 방에 들어온 이가 누군지 알 것 같은데. 그렇지만 정확한 증거가 없으니 추궁을 할 수도 없다. 너는 내 이마를 쓸어내리며 무슨 생각을 했는가. 사슴뿔은 잘 받은 건가? 맘에 들었을려나. 혹여 보낸 것에 악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고 잠시 걱정을 했으나, 우리의 사이에서 악의라는 감정은 언제나 발생되는 흔한 것이다. 쌓아둔  탑 위에 돌 하나가 올라간다고 티도 나지 않을 것이니 괜찮다는 결론을 내린다.

 너는 죽은 듯이 자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순간 만큼은 아이베르크 티어넌은 록시 애너톨에게 명백한 약자(弱者)였고, 비루한 자였다. 네게 저항하지 않고 편하게 죽어줄 수 있는 그러한 상태. 그렇지만 록시 애너톨은 아이베르크 티어넌을 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마를 쓸어넘겨주곤 떠났다. 그 순간 만큼은, 네가 나를 봐주고 있던 것이겠지. 


 조만간 애너톨 가로 서신을 보내야겠어. 영지에 방문해달라고. 찻주전자에 남아있던 국화차를 남김없이 따른다. 늦겨울이었지만, 겨울이 끝난 것은 아니었기에 아직은 조심해야하는 아이베르크였다. 그리고, 지금껏 단 한 번도 애너톨 가에서 자신을 초대한 적이 없으니 자신은 갈 수가 없었다. -록시 애너톨은 첫 방문 이후로 오고픈 대로 왔다가 사라졌지만- 펜을 들어 편지를 썼다. 록시, 국화차가 더 필요해.

 편지를 봉투 안에 넣고, 봉투를 닫는다. 밀랍을 붓고, 밀랍이 굳기 전에 압화 한 송이를 올린 후 인장을 새겼다. 붉은 밀랍에 새겨진 새의 문양과 흰 샤스타데이지가 꽤나 어울리게 자리잡혔다. 만족한 듯 과정을 마무리하고 편지를 보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베르크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붉긋한 것을 보곤 그것이 무얼까 하고 한참을 보았다. 


 매화구나. 매화 봉우리가 피었구나. 아, 늦겨울이구나. 봄이 오는구나.


 그의 겨울이 그렇게 끝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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