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네 말에 안도해
달그락.
찻잔을 내려놓는다. 고요한 정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말의 울림으로 미약하게나마 존재를 내비치고 있던 두 사람의 존재도 장미꽃의 향기에 파묻혀 희미해졌다. 아이베르크 티어넌은 감았던 눈을 뜨지 않은 채, 입엔 미소를 유지한 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변치 않는 것을 사랑이라 함은, 네가 날 싫어하는 것도 변치 않으니 이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어찌 보면 참 철학적이면서도, 록시 애너톨이란 사람이 물어볼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이어온 오해와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과거에서 생긴 반사적인 생각일 뿐, 아이베르크는 네가 하는 질문을 이해했다.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사랑은 변치 않는 것인가? 사랑은 어째서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애초에, 사랑이라는 것은 끝이라는 것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닌가? 단지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거리가 얼마나 먼 가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랑은 변치 않을 리가 없다. 변하는 것이 사랑이다. 조금씩 변하고, 틀어지고, 그럼에도 이어지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하는 사랑이 나의 기준에선 너무나도 어긋나있는 사랑으로 보였던 것 처럼.
하지만 너의 말도 일리가 있다. 결국 어떠한 형태로도 그 사랑이 이어진다면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 맞으니까. 일부러 너에게 그러한 사랑을 원하는 것인지 물어보았다. 네가 말하는 사랑이 내가 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너는 그것으로 괜찮은 것인지. 사랑이라는 것은 보통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을 말하지 않던가.
..물론, 아이베르크 티어넌은 록시 애너톨을 사랑하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로써는 '너를 사랑하도록 노력하겠다' 란 기약없는 말을 이 정원에 묶어놓았다. 보라색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것이 자신이 한 말에 대한 결과일 것 이라고. 그것이 네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네가 그런 사랑을 해줄 것 같지도 않고.
그럼 너는 어떠한 사랑을 바라는데.
너만 사랑을 모르는게 아니라서, 네가 모르는 사랑을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을리가 없으니. 자신의 말에 안도한다는 너와 그것에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는 나는 뭐라 설명해야하는건지. 아이베르크 티어넌은 눈을 떴다. 똑바로 떠 록시 에너톨을 본다. 평생 거짓을 고한 이가 어떠한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지 물었을 때 대답을 하지 못하듯, 평생 거짓을 믿고 살았던 이가 어떠한 사랑을 아는가에 대해 묻는 다면 대답하지 못한다. 거짓과 거짓으로 이루어진 관계에서 다른 이들이 말하는, 서로에게 갈구하고 도움을 주며 찬란한 햇빛마냥 서로를 비추는,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감정 따위가 생겨날 리가,
없다.
꽃잎이 반 정도 떨어진 채로 놓여진 보라색 장미꽃을 집어든다. 집어드는 과정에서 꽃잎이 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히 들어, 아직 열기가 남아있는 찻잔 안에 넣는다. 따듯한 홍차를 머금은 장미꽃이 일순 꽃잎을 펼쳐 찻잔 안을 가득 채웠다. 불안정하고 영원한 사랑? 시작이 어긋났는데 불안정한 것이 당연한거다. 아이베르크는 입을 열어, 무겁게 짙누르던 향기들을 밀어내고 다시금 자신의 존재를 들어낸다.
그럼 이것이 우리의 사랑의 형태인 거겠지.
잔잔한 미소와 함께 장미꽃이 든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댄다. 홍차에 이미 꽃잎이 떨어진 탓에 으깨어진 장미가 섞여, 그 맛은 쓰기만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마신다. 쓰고, 맛없고, 계속해 서로를 상처줄테고 나는 여전히 널 싫어할거고, 너 역시 나를 싫어할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것들이 만나 서로의 곁에 있어준다 하더라도 과연 두 사람이 올바른 것으로 바뀔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 사랑의 형태가 이런 것이라면, 그렇다면. 사랑을 하자, 록시. 영원히, 불안정하게.
그것이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사랑이야. 그렇게 말하며 씁슬히 웃어보인다.
나 역시 네 말에 안도해
+
가장 처음 쓴 글. 그리고 이 둘의 시작....감회가 새로워서 코멘트 달고갑니다....
이런말을 했군요 웃긴다 그때의 나 반성해라진짜
여튼 이글은 2020년 5월 28일날 썼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