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찾는 이가 없어도 영지를 방문했다. 손님은 어김없이 양팔 가득 눈송이를 가져와 뿌려두었다. 그러한 탓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이여, 이곳의 날씨는 영하. 폭설이 내리고 있다.
겨울이 되면 티어넌의 영지에선 다양한 소리가 들려왔다. 얼어붙은 호수 아래서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음을 알리는 미약한 물소리와 호수를 둘러싼 나무들이 눈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사슴무리가 눈을 밟아 풀을 찾아가는 소리,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스튜가 끓는 소리, 한 사내가 장총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는 소리-
록시 애너톨은 티어넌의 저택에서 오랜 시간을 머문 자다. 처음엔 창문을 타고 들어온 불청객으로, 다음은 소파의 자리를 축내는 조객*으로, 그다음은 한 방의 침대에 오래 잠들어 있던 환자로, 마지막엔 누군가의 옆자리를 지키며 아이베르크 티어넌의 약점이자 사랑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현재, 록시 애너톨이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비어있는 침대 옆을 손으로 쓸고 있는 것은 그가 말없이 자신을 두고 나갔다는 서운함과 동시에 또 사냥을 나갔음을 알아차린 것에서 오는 미약한 분노였다. 몇 해를 같이 보내며 그만큼 나이를 먹었는데도 어째 그는 사냥하는 취미를 버리지 못했다. 사이가 나아지기 전, 그는 자신을 인간 덜된 것이라고 부르곤 했었는데 온전한 인간이 되었다고 부를 수 있는 기준을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친다면 지금 인간이 덜된 것은 아이베르크 티어넌이다. 분명 자신은 사냥을 나가는 것이 싫다-이것은 조금 설명을 붙여 할 필요가 있다. 록시 애너톨은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그리 좋게 보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베르트 티어넌이 사냥을 나갈 때마다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고 말했고, 이 정도로 사이가 나아지고 발전했으면 자신의 의견을 듣고 수용해 횟수를 줄인다던가, 아니면 사냥을 가기 전 가면 간다고 말을 하고 나가는 방법을 선택해야하는 것이 맞을 텐데 이 인간은 매번 자신이 자는 사이 몰래 나가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한 번 나가면 이르면 아침, 늦으면 저녁, 자신의 화를 돋우기로 작정한 날엔 그다음날 기척을 죽이고 저택으로 들어오다 자신과 마주치곤 했다. 반복되는 상황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는 머저리인지 말못하는 것들의 생명을 취하는 것이 자신과 함께 있는 것보다 즐거운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눈을 굴리며 허접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록시, 오늘은 일찍 들어오려 했어. 생각이 많아 정리하려고 다녀왔어. 그리 말하며 자신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안아오는 그 꼴이 자신이 사고를 친 것을 알아 꼬리를 축 내린 채 주인의 눈치를 보는 강아지 같은 것이다. 자신이 정말로 사냥개라도 되는 줄 아는 것인가? 계속 귀엽다 귀엽다고 해주니 그리 착각을 하는 것인가.
그러한 행동에 화가 풀리는 자신도 단단히 문제가 있었다.
이번에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제대로 한소리를 해야겠구나. 방문을 열고 나가니 머리가 하얗게 변한 집사가 허허 웃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 저 사람은 또 알고 있었구나. 사냥을 나갈 것을 알고 있었고 사냥 준비를 도와준 것도 집사님이구나. 처음 뵈었을 때는 회색의 머리카락을 가지셨던 분이 최근엔 눈이라도 쌓인것처럼 희게 변하여 걱정을 하던 중이었건만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지고 말았다. 베르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나요? 네, 아직 들어오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아침은 날도 추운데 양송이를 넣어 만든 크림 스프로 괜찮으실까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하는 집사가 오늘따라 야속하게 느껴졌다. 저와 아이베르크를 걱정하는 마음의 크기가 같은 사람인 것은 알고 있으나 제 주인이라는 점 하나 때문에 자신에게는 말하지 않고, 아이베르크를 도왔다는 점이 마음속에서 가시 하나가 튀어나와 쿡쿡 찌르는 느낌이었다.
네, 크림스프에 양송이 가득. 이양이면 크루통도 넣어주세요. 설탕을 입힌 거로요. 오, 록시. 아침부터 단 음식은 좋지 않아요. 록시 애너톨은 집사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이번엔 집사가 물러난다. 그렇게 해주겠다는 뜻이었다. 록시, 그럼 오늘은 무얼 하실 건가요? 몰라, 책이나 읽든가 할게요. 아이베르크는 언제 들어온대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복도 저 끝에서 하인 하나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두 사람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아이베르크님이- 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사람은 하인이 뛰어온 복도를 자신들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아이베르크 티어넌의 시점이다. 우리는 공평하게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아이베르크 티어넌이 사냥을 취미로 삼은 이유는 세 가지 정도가 있는데, 첫 번째는 총이라는 것은 관리도 관리지만 주기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슬기 마련인지라 이것을 사용할 일이 필요했다. 보통 그는 총을 상대를 위협하거나, 상대를 향해 쏘거나,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편이었고 아무리 성질과 공포를 잘 다루는 이라도 사람을 향해 총구를 들이미는 일이 얼마나 평판에 좋지 않은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총구를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 돌렸다. 두 번째. 그는 사냥을 위한 기다림과 고독의 시간을 즐겼다. 사냥은 기다림의 보상이다. 같은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사냥감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행위다. 그는 기다림의 시간 동안만큼은 오로지 총구와 사냥감, 그것만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실질적으로 사냥을 하는 이유였다.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는 꿈을 꿀 때마다, 자신을 험담하는 귀족들의 일로 머리가 아플 때마다 그는 사냥을 갔다. 세번 째, 고기가 맛있다. ...만약 이것을 록시 애너톨이 들었다면 그게 뭔 소리냐- 라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지만 그는 고기를 정말 좋아한다. 절대 그가 동물의 생명 자체를 취하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니었다. 그는 먹을 수 있는 것들만 사냥을 했고, 사냥한 것을 하나도 버리는 일이 없었다. 그는 인간의 생명은 몰라도 동물의 생명은, 허투루 여기는 자가 아니었으니.
그리고 지금, 아이베르크 티어넌은 멍한 표정을 짓고 침대에 누워있다. 머리와 오른눈 한쪽엔 붕대를 감고 왼쪽 팔은 부목을 대고 이 역시 붕대로 어깨와 팔을 같이 감아 고정해두었다. 왼 다리도 부목을 댄 것을 보면, 몸의 왼쪽부분을 크게 다치게 된 듯 했다. 그런데 왜 오른눈을 다쳤지. 아, 자신이 오른손잡이니 오른눈으로 조준을 하기 때문이었지. 아무래도 조준경에 그대로 눈을 부딪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이 다친것 보다 다른 것을 걱정하는 중이었고 정신을 차린 직후부터 그의 머리속에는 큰일 났다- 이 생각 하나뿐. 그리고 그의 옆에는 무표정하게 그를 내려다보는 록시 애너톨이 있었다. 부상에서 오는 고통보다는 그의 표정이 더 신경 쓰여 어색하게게 눈으로 웃으며 입을 연다.
...안녕 록시?
말하지마.
응.
아이베르크 티어넌은 인생의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록시 애너톨이 사냥을 마치고 '실려' 들어온 아이베르크 티어넌을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얼어붙어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창백한 모습으로 피를 흘리며 눈을 감고 있는 아이베르크 티어넌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항상 자신을 보며 웃고 있었던 입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고, 하인이 들고 온 그의 장총은 반으로 부러져 있었다. 나뭇가지에 눈이 쌓여 부러진 나무를 설해목(雪害木)이라 하는데, 몸 이곳저곳이 부러진 그가 딱 그 꼴이었다. 그의 몸과 총에는 여전히 눈의 흔적이 남아있었으니 그렇게 불러도 무리가 없었다. 록시 애너톨은 '잠든다'라는 의미가,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잠든다. 아이베르크 티어넌이, 잠에 들 수도 있다. 아이베르크 티어넌과 록시 애너톨 사이에서 '잠든다'라는 의미는 단순하게 잠이 든다란 의미가 아니었다. 특히나 아이베르크에게 있어서 잠든다란 말은 금기에 가까웠던 말이며 가끔은 그의 울타리를 부시는 일과도 같았다. 록시 애너톨은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으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그는 아이베르크의 부상입은 모습을 보며 밑바닥이 꺼지며 호수 속으로 잠겨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주의 부상으로 소란스러운 저택에서 홀로 겨울보다 차가운 고독을 여과없이 마주한다. 만약 그가 저렇게 잠이 든다면? 그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는다면? 세상이 시계 방향으로 돌며 일그러지는 느낌이 들고, 물이 없는 곳인데 이상하게 어깨 부분까지 물에 잠겨간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고독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봐요. 아이베르크 티어넌이 힘겹게 눈을 떠 입을 열고 말하고 있었다. 그제야 록시 애너톨은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고 느꼈으며 젖어가던 감정을 빠르게 물물들여간것은 걱정과 분노였다. 그리고 눈치를 보는 것은 아이베르크 티어넌이었고. 간만에 침묵만이 감도는 방에서 분홍머리의 사내는 쉴 새 없이 눈을 굴리며 말을 건넬까 말까 고민하다 자신을 흘겨보는 붉은 눈에 다시금 입을 다무는 것을 반복했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록시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그는 한참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사슴한테 들이박혔어. 그리고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사냥꾼이 사냥감에게 사냥을 당하면 어째. 질문에 다시금 침묵이 찾아왔다.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어.뭐?
사슴을, 죽일 수가 없었어.
아이베르크 티어넌은 분명 사슴 사냥을 나간 것이 맞았다. 본디 겨울에는 심하게 아팠던 사람이라 과거 귀족 하나를 엿먹이기 위해 무리해 겨울 사냥을 나갔던 것 이후로 처음이었다. 지금은 더 이상 겨울에 아프지 않았고, 간만에 사슴고기도 먹고 싶었다. 겨울이니 록시에게 사슴고기를 넣은 스튜를 먹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 사슴 가죽으로는 록시가 쓰는 책상 위를 덮을 가죽보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해가 뜨기도 전 방을 나서기로 했다. 옆에서 자고 있던 록시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깨지 않도록 조심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깨기 전에 돌아오자. 분명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올해는 눈이 많이 내렸다. 폭설이었던 탓에 눈이 무릎까지 쌓여 푹푹 다리가 들어갔다. 아이베르크는 익숙하게 눈을 헤쳐 걸어나가며 인적이 드문 호수의 끝부분으로 향했다. 호수가 얼어도 모든 부분이 얼어붙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곳은 두껍게, 어느 부분은 얇게 얼어붙는다. 어느 계절이든 숨을 쉬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물이 필요했고 그것은 동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총을 겨누기 좋게 자리를 만들어둔 곳을 찾아내, 아래 모포를 깔고 그 위에 엎드린 후 자신의 몸 위에도 모포를 깔았다. 그렇게 고독과 친구가 되는 시간이 찾아온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이 모포를 덮어 자신이 눈 속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쌓여있었다. 다행히 눈 속은 따듯해 그리 춥진 않았다만 이대로 오랜 시간을 보내면 큰일이 날 것이다. 머리끝은 얼었고, 속눈썹에는 눈이 들러붙어 하얗게 변했다. 홀로 사냥감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갔다. 시간도, 소리도,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해도 떠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야 할 텐데. 온 세상이 하얗게 보이고, 가끔 들리는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공허히 울려 퍼진다.하얗게 피어오르는 입김마저도 얼어붙을 때, 드디어 사슴이 시야에 잡혔다.
수사슴이었다. 등에도, 뿔 위에도 새하얗게 눈이 쌓여있었다. 사슴의 뿔도 눈이 많이 쌓이면 부러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베크르는 침착하게 총구를 사슴에게 겨눈다. 익숙한 일이다. 총구를 겨누고,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되는. 조준점을 사슴의 심장 부근에 맞추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그는 사슴이 한 마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눈이 너무 내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탓에 사슴이 한 마리라 착각했었나보다. 다른 한 마리는 암사슴이었다. 사슴 두 마리는 긴 목을 숙여 물을 마시고, 뿔과 몸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서로를 마주 보다 암사슴이 수사슴에게 머리를 기대왔다. 아이베르크 티어넌은 그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대로 한 발. 방아쇠를 당겨 쏘면 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사슴 두 마리를 지켜만 보았다.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다. 멍한 표정으로 사슴들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자신도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방아쇠에 걸었던 손가락을 풀었다. 아릿한 감정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저 사슴들이 돌아가면 자신도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가야겠다고. 그 순간에, 아이베르크는 숫사슴과 눈이 마주쳤다. 거리도 꽤 되었기에 그럴 리가 없었지만 분명히 사슴은 저를 보고 있었다. 사슴과 인간은 한참을 서로를 마주 본다. 처지가 같구나, 어쩌면 저 사슴이나 나나 같은 입장에 처지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자신이 저러한 상황이라면, 사냥꾼이 자신과 제가 사랑하는 이를 노린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뚝, 뚝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눈이 쌓이는 소리마저 난다는 착각이 들었을 때, 사슴은 인간을 향해 돌진했다.
...뭐 그랬어. 사냥당했어. 다행히 몸을 바로 틀어 굴렀기에 이 정도였던 것 같아. 그놈도 내가 자기를 공격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어 보이니 더는 돌진하지 않더라고. 그는 모든 일을 다 말하진 않고 뭉그러트려 말했다. 사실은 바로 몸을 틀어 구르지 못했다. 멍하니 사슴이 자신을 향해 오는 걸 보다 정말 가까워졌을 때, 그제야 총구를 사슴을 향해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 다음 굴렀다. 이래나저래나 다쳤을 것이지만 지금보다는 덜 다쳤을 수도 있었겠다. 멍청했던 짓을 한 것이지. 멀쩡한 오른쪽 손으로 그는 록시 애너톨의 손을 잘못한 어린애가 쭈뻣거리며 손을 잡아 오는 것 마냥 아주 소심하게 잡아왔다. 록시, 화났어? 응. 화났어. 미안해. 응. 그리고 침묵. 아, 우리 사이에 침묵은 언제나 길고 길었고 무거웠지. 그러나 이번 일은 자신의 잘못이 맞았기 때문에 잠자코 있다가, 변명하듯 소리친다. 그래도 거기서 어떻게든 여기까지 걸어왔잖아. 그 직후 록시 애너톨의 눈빛이 매서워지다 못해 죽일 듯이 자신을 노려보았기에 아이베르트 티어넌은 입을 꾹 다물수 밖에 없었다.
다음부터는 사냥을 나가기 전에 간다고 말하고 가. 네가 늦어지면 내가 찾으러 갈 수 있게. 위치도 말해주면 더 좋고. 한참 만에 록시 애너톨이 입을 열어 말하곤 채 다잡지 못한 손을 자신이 잡아주었다. 결국 언제나 그를 용서해주는 건 록시 애너톨이다. 가끔은 그 반대의 상황이 오기도 했었지만, 둘은 언제나 항상 서로를 용서했었고 옆에 있어 주었다. 이 세상에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들이 기댈 수 있는 건 서로 뿐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냐, 나 이제 사냥을 그만 두려고. 이제 더는 못하겠어, 사냥꾼이 사냥감을 보고 방아쇠를 못 당긴다니, 그만둘 때가 된 거지. 정말? 응, 정말로. 부러진 나무처럼 반동강이 난 장총을 슬쩍 보며 그는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저 총은 다시 맞춰야겠구나. 자신이 총을 들어야 할 순간은 언제든 올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 사슴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뿔로 들이밀러 달려온것 처럼. 자신도 누군가가 록시 애너톨을 노린다면 그 사람을 향해 망설임 없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그 사슴도 똑같았다. 사슴도, 자신의 짝을 지키기 위해 뿔을 들이밀고 자신에게 돌진한거다. 결국 사슴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던 것이다.
영지 어디선가, 사슴 두 마리가 호숫가를 걷고 있었다.
*조객 - 이익(利益)이 적은 고객(顧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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