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성글

內省不疚


 

 자신이 있는 곳은 눈에 닿는 곳곳이 다 흰색이다. 흰색은 보통 좋은 의미라고 하지만, 적어도 자신에겐 좋은 의미가 아니었으니. 하얗게 칠해진 벽에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얀 종이가 끼어진 받침대를 들고 자, 오늘은 이걸 주사할거야- 라고 말하며 다가오는, 얼굴조차 하얀색이 되어버린 것 같은. 아, 흰색의 무덤에 빠진 기분이다. 모두가 흰색이다. 백()을 찬미하여 이곳의 모든 것은 흰색인것인가? 그러기엔 자신에게 찔러넣어지는 것은 단 한 번도 흰색인 적이 없다.

 

그리고, 제 앞에는 최근 저로 인하여 죽을 뻔한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 실험하던 것이 잘못되어 자신이 폭주했고, 상태가 좋지 않은 저를 살핀다며 들어왔다가 공격당했다. 다행히 크게 일이 나기 전 멈출 수 있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결과와 죄책감은 별개인 것이라, 무겁게 짓눌러서 상대의 눈치를 보게 만든다.

 

…정작 공격당한 상대는 아무렇지 않는 듯 했다만.

 

 알다르는 자신의 기준에서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보통 다른 연구원들은 위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있고 난 후면 지레 겁을 먹고 멀리하기 마련인데, 어째 저 치는 그런 것이 없다. 아, 연구원이니 ‘저 치’라고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호칭인가. 사람 좋은 표정을 하며 괜찮아, 나 안 다쳤잖아? 그럼 오케이지.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는 거라고- 라고 하며 되려 자신에게 몰래 가져온 담배를 건네주는 것이다. 사람이 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도망치는 법을 까먹은 것인지. 침침한 마음이 되어 상대를 보다 담배를 물어 질겅질겅 필터 부분을 씹었다. …쓰다.

 

 알다르 씨, 요즘은 어떤 계절이고 어떤 날씨인가요. 지금은 산이 막 푸릇푸릇 해질 시기지. 네 머리처럼. 바다는 아직 물이 차고. 비는 안오는 날씨야. 그는 자신이 질문하는 것에 대답해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처음엔 바깥에는 무엇이 있고 산과 바다는 무엇인지를 물었다만 요즘은 연구소의 분위기는 어떠한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복잡할 것 같은데 힘들지 않는지를 물었다. 학습이다. 제 앞에 있는 이는 선생님이고. 다만 어째서 단 한 번을 싫다는 내색 없이 모두 대답을 해주는가, 그것이 의문이었다. 자신을 딱하다 보는 것인가. 

 …하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유일한 창구인지라 정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부터 친절이라는 걸 내밀어준 사람은 알다르밖에 없었다. 그러니, 계획하고 있는 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다. 미안함이 고마움을 앞섰다. 담배 그만피고 사탕먹어. 하며 또 손에 쥐어주는 자두맛 사탕이 양심 한가운데에 툭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가는 기분을 느꼈다. 클로버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알다르 씨, 놀라지 말고 들으십쇼. 저 이곳을 탈출할 생각입니다. 

 

..

.

.

 

그리하여, 지금 현재의 상황이다. 

 

 손에는 기계에서 뜯어낸 철근을 든 채 주변을 살폈다. 흰색만 존재할 줄 알았던 연구소 벽에는 붉은 피가 곳곳에 튀어있었다. 자신이 한 것임을 알기에 고개를 돌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지긋지긋한 곳과도 작별이구나. 그러한 생각을 하며 출입문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누군가가 서있었다. 그 누군가를 알아보고는 힘이 빠졌다.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문 앞에 있었다.

 

…탈출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는 별 반응이 없었다. 화를 내거나 혹은 타이르거나 둘 중 하나의 반응이 나올 줄 알았건만 그러지 않았다. 가만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나갔던 것 같다. 그랬던 사람이 왜 이곳에 서있는지. 한참을 굳은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자니 호탕한 웃음 소리와 함께 괜찮아- 란 대답이 돌아왔다.

 

무엇이 괜찮단 말인가. 이 난장판에서.

 

 자, 이거. 선물같은거야. 떠돌이 생활은 잘 할 자신 있지? 아마 넌 잘할 거야. 그런 말을 하며 제 목에 걸어주는 것은 출입증이었다. 왜? 이걸 주는 그는 추후 어떻게 되는 것이지? 왜 이걸 주는겁니까. 알다르 씨가 곤란해질겁니다. 으응, 괜찮아. 연약한 아저씨라서 빼앗겼다고 할게.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목에 이곳을 나갈 수 있는 만능 열쇠가 걸렸건만 정작 나가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거렸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 그는 괜찮을 것인가? 자신이 이대로 나가서, 나가버리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연구소에 몸 하나 제대로 지키기 힘들 것이 뻔한 연구원을 두고 나가도 되는 것인가? 생각이 끝없이 자라고 자라나선 올바름의 기준을 해치고 상식과 멀어지게 만든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은-



손을 잡고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가 원해서 자신을 따라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붙잡고 가기에 끌려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전자라면 공범이라 치고, 후자라면 자신의 탈출을 정당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로 합리화한다. 아니, 애초에 자신은 결백(潔白)하다! 이 탈출은 결백의 정당화다! 이런 곳에 자신을 가둔 사람들이 문제가 아닌가? 다만 그것과 별개로 선뜻 건네준 호의를 자신도 돌려주고 싶었다. 이것이 올바른 방법으로 돌려주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안전했으면 했다. 이양이면 오래. 

 

문득, 알다르에게 묻고싶어지는 것이었다. 당신이 본 세상은 어떠한 백색으로 가득 차있었는지.





內省不疚

「자기(自己) 자신(自身)을 되돌아보아 마음속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뜻으로, 마음이 결백(潔白)함을 이르는 말.

 


 

너무 멋진 이어주신 글 - 파랑님

https://stella-wave.tistory.com/m/5

'연성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는 이여  (0) 2023.06.18
顯在  (0) 2023.03.31
20230304(2)-  (0) 2023.03.04
20230304- (1)  (0) 2023.03.04
+섬에 사는 사람들  (0) 2022.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