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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글/bliss

육아에 소질은 정말 없어서

악마야? 


샨 리레나. 고귀한 블란테의 기사. 마지막 3인의 기사 중 하나. 그리고 지금은 혁명군의 설립자 중 하나. 그렇지만 그녀는 지금 현재 그런 거창한 칭호따위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귀에만 안들어왔을까? 머리 속에도 안들어왔다. 그야, 지금 제 앞에 나타난 조그마한 아이 하나 때문이었다. 지금 이 내가, 이상한 것을 보는 걸까?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자신도 모르게 익숙하면서도 다시 부르게 될 줄 몰랐던 호칭이 나왔다. 악마야? 

아이는 눈을 한번 데굴 굴리더니, 샨. 이라며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 때 깨달았다. 아, 이 아이는 너구나. 이게 무슨 상황일려나. 신의 장난인 걸까? 


그런데 왜 아이의 모습인거니, 악마야?




 혁명단 막사 안에 어린 아이 하나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샨이 세상 소중하게 안고 다닌다는 것도. (물론 이 둘이 하는 대화를 들어보면 대체..? 라는 의문이 드는 대화였지만) 혁명단 막사에서, 그것도 샨 리레나의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이는 한쪽 눈을 머리카락으로 가린, 샛노란 금발의 아이었다. 마치 원래 자신은 이곳에 있었다는 듯 와서, 너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아이. 그렇지만 하는 말들이 어째 과연 이것이 아이가 할 법한 말인가? 할 정도로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샨은 절대로 아이를 제 옆에서 떼어내지 않았고, 잘 때 조차도 같이 데리고 잠을 잤다. 혁명단의 단원들 사이에선 저 아이가 사실은 샨의 친동생이다, 같은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가 모두 알다 싶히, 전후사정은 그렇지 않다.


샨은 갑자기 나타난 이 아이 때문에 꽤나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한다. 눈 앞의 볼을 한번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아이는 사실 네스토르 P. 데시데리우스라는 걸. 그러니까, 악마다. 어린애의 모습이던 뭐던 간에 본질은 악마다. 그리고 몇일 간 지켜본 결과, 몸만 아이이고 정신연령은 성인이다. 400살이나 되는 네스트로다. 즉, 샨의 표현을 빌리자면, 악마가 사람을 홀릴려고 아이의 모습으로 왔어- 정도가 되겠다. 

그것이 틀린 말이 아니였던 것이 네스는 혁명단의 사람들에게 특유의 말로 사람의 혼을 쏙 빼놓거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거나, 분노하게 만들거나. 이 세 개중 하나를 아주 잘 해내고 있었다. 그 덕에 샨은 잠깐이라도 네스를 제 곁에서 떨어지게 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을 할 줄 모르니까. 또한 그 뿐일까? 제 외형이 어떤지 너무 잘 알고 있는 건지, 아주 기가막히게 잘 써먹는 것이었다. 늘 어디선가 간식거리라던가, 자신이 보기에 재밌어 보이는 것들 -문제는, 그것들 대다수가 군사용품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을 늘 손에 들고 다녔다. 샨은 그것을 볼 때마다 은은하게 웃으며 뺏어 본래 주인에게 돌려줘야만 했다. 악마야, 그 입 좀 다물면 안될까? 저는 별말 안했는걸요? 저들이 그저 혼자 반응 하는 겁니다. 샨의 입이 방긋 웃었다. 아, 대원들에게 아이에게 물건을 주지 말라고 주의라도 줘야 하는 걸까? 성인의 모습이었다면 멱살이라도 잡았을 테지만, 지금은 아이다. 샨은 그럴 때마다 네스를 안고 정원으로 자리를 피해버렸다. 

당연히, 이 난리통에 정원 같은 것이 있을리가 없다. 샨의 정원은 혁명단이 위치한 뒷 쪽에 있는 공터였다. 처음 왔을 땐 버려진 지 오래인 죽어버린 땅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땅에 샨은 꽃과 나무를 심었다. 데이지, 개나리, 제비꽃, 자신도 모르는 꽃들을 씨앗을 얻어와 심었다. 처음엔 제 동료들의 숫자만큼만 심었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이 공터는 종류가 뒤섞인 꽃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죽은 것 같은 땅에 생명이 깃들자 자연스럽게 다른 생명들도 찾아왔다. 심었던 떡갈나무는 꽤 제법 자라게 되었고, 듬성 듬성 심은 적도 없던 나무 묘목들이 보였다. 샨 리레나는 무언가를 기르고 가꾼다는 취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 곳만큼은 꽤나 맘에 들어했다. 레이피어를 잡고 누군가의 생명을 뺏던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많이 좋아했던 동료들을 위해 만든 곳이다. 이곳은 샨이 처음으로 키워낸 생명이고, 휴식처였다. 혼자 있고 싶을 땐 이곳에 자주 오게 되었다. 

저번에 몰래 가져다 놓은 나무 의자에 앉은 후 샨은 네스를 옆에 내려다 주었다. 가만히 앉아 하늘을 보는 일이 늘었다.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살아가고 있어요. 내 사람들아, 보여요? 샨은 제 옆에있는 어린 네스를 본다. 자신을 보고 있던 건지 시선을 마주쳤다. 물끄럼히 보다, 머리를 쓰담거려준다. 그래, 내가 이 악마의 머리를 이때 말고 언제 만져보겠니. 그렇게 만져본 머리카락은 짜증날 정도로 부드러웠다. 


....


저, 그래서 다음 작전은-


샨은 지루하다는 듯 작전설명을 듣고 있었다. 제 옆엔 네스가 꼭 붙어선 머리카락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슬쩍 보고는 그냥 냅두었다. 평생 재미만을 추구하던 악마다. 죽을 때 조차도, 그리 도주하라 일렀건만 이게 더 재밌다며 하지 않았던 악마다. 자신도 재미없는 작전 회의가 네스에게는 얼마나 재미 없을지, 일일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하품. 그러다 샨이 다시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평화지역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었다. 순간, 몸이 조금은 뻣뻣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그것을 알아챘는지 네스가 샨을 보고 있었지만, 샨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 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저번 전쟁에서 죽은 동료를 추모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샨에게 옮겨졌다. 샨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었다. 리레나님,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다른 사람이 샨 대신 대답했다. 저분은 저번 전쟁에서 생존한 기사 분 들 중 한분이십니다. 정적-. 


작전을 설명하던 사람은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동료분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작전은- 


죽지 않았어. 

샨의 한마디에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어. 누가 내 동료들이 죽었다 했지? 그들은 죽지 않았다고. 그딴 말이나 할거면 작전지휘관 같은거 때려치우는게 어때? 이 내가,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면서 들어주고 있는데 그런 망언이나 할거야? 아무도,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샨은 한참을 아무말이 없다, 그대로 나가버린다. 그 뒤를 네스가 쫓았다.

샨, 같이가요. 샨? 네스의 부름에도 샨은 멈추지 않고 걸었다. 어린 네스가 샨을 쫓아갈 수 있던 건...글쎄. 그가 악마라서 그런가보다. 그녀가 멈춘 곳은 정원이었다. 샨은 우두커니 서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꽃들을 보고만 있었다. 샨, 그들은 죽었어요. 왜 인정하지 않아? 그제야 네스를 내려다 보았다. 한참을 보다 네스를 안아주었다. 너는 돌아왔잖아. 너는 돌아왔어. 나한테 그 사실을 상기시키지마. 그러면 너라도 좀, 화가 많이 날 것 같단다 악마야. 묘하게 네스가 어려진 후, 예전보다는 꽤나 친절해진 샨이었다. 전이라면 벌써 화를 내고도 남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둘은, 한참을 정원에 있다 막사로 돌아갔다.

막사로 돌아온 후 곧바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아마 일전의 회의시간의 소동 때문에 한동안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 있다면, 그 사람은 오늘 샨의 대련 상대가 될 것이고. 아마 그 시간을 악몽으로 보내게 될테고. 혁명단의 사람들은 왠만해서는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다. 샨은 무의식적으로 네스를 토닥거렸다. 마치 재울려는 듯이. 나는 잠을 안자는데-. 알고있어. 그렇지만 샨은 계속해서 토닥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토닥거리다, 웅얼 거리듯 입을 여는 것이었다. 네스. 나는 네가 돌아온 것이 좋긴 하지만, 네 원래 모습이 더 좋은 것 같단다. 언제 돌아오니? 그리고 계속해서 샨은 혼자 중얼거렸다. 있잖니, 다음에 올 때는 이런 곳이 아니라 평화로운 곳에서 다시 성장하렴. 전쟁이 없는 곳에서 다시 살아가. 나중엔, 바다라도 보러갈까. 어쩄든 몸은 어린이인데, 좋은 걸 보고 자라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내가 워낙 뭔가를 돌보고 기르는 것엔 소질이 없어서 말이야... 그 이후의 말은 없었다. 들려오는 것은 고르게 들리는 숨소리 뿐. 샨은 네스를 끌어안곤 잠들어 버린 것이었다. 


...여담이지만.꽤나 시간이 흘러서 샨 리레나는 저 말을 했던 것을 네스토르가 원래 성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후 후회했다. 어김없이 멱살을 잡으며 악마야? 하고 부르는 것이 막사 안에서 끊임없이 들렸다는 후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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