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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글/bliss

respiration



내가 보고 있는 것-


"속보입니다. 4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시체 한 구가 해변으로 밀려들어와- "


 저건, 아무래도 내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그 시체 앞에 서있다. 삼일 전까지만 해도 나였던 것. 이미 물에 퉁퉁 불어 지갑 안에 있던 기자증과 주민등록증을 봐야 구별이 가능할 정도이지만 나는 알 수 있다.


금은성은 죽었다. 일주일 전, 알 수 없는 사이비 무리들에게 쫓겨 그대로 바다 속으로 침수 되었다.


 영영 이대로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마지막 기도를 신이 들은건지 운 좋게 수면 위로 떠올라 그대로 해변으로 밀려올라왔다. 아니, 저 말고 다른 사람들 좀 돌봐달라니까요. 그렇지만 고맙습니다.


 은성은 한숨을 쉬며 취재를 나온 기자들을 둘러보았다. 수없이 터지는 카메라셔터 소리와 불빛, 상황을 보도하는 기자들. 아, 다들 익숙한 얼굴들이다. 다른 방송국의 기자들. 그리고... 은성아, 선배님. 울먹거리는 기자들. 아- 금은성은 처음으로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분명 삼일 전까지만 해도 같이 밥을 먹고 담배를 피고 일을 했었는데. 그렇지만 자신은 죽었다. 사실, 이게 자신도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나는 유령인가? 하도 억울하게 죽었더니 죽기 전에 조금 둘러보고나 가라고 이렇게 된 건가? 저기, 아까도 말했지만 이런 배려는 필요 없다니까요? 아까 고맙다고 말한거 취소할게요. 정말로, 전혀 좋지 않다.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전혀 기분 좋지 않다. 이상하게 호흡이 되지 않았다. 물에 빠져 죽은 탓 일까? 숨을 내뱉고 들이마셔 보았다. 죽은 사람이라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은성은 다시금 제 동료들을 보았다. 울지마 이것들아. 기자가 되어서는, 취재하러 왔음 울지 말고 일을 해야할거 아니야. 사진을 찍고 기사를 어떻게 쓸지 생각을 해야지 왜 울고 있어 이것들아. 어? 이런 일 가지고 울거면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하려고. 입을 열어 말을 해보지만, 전달 될 리가 없다. 한참을 보다 자리를 벗어났다.


 유령이란 상태는 꽤나- 편리하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은성의 다음 목적지는 자신의 장례식장이었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보고싶었다. 이양이면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가고 싶었다. 그래도 제법 합리적인 생각이 아닌가? 은성은 자신의 사진 앞에서 울고 있는 직장 동료들과 몇 되지 않았던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과 -


저 자식이 왜 왔어. 


 그리고 빌어처먹을 동생놈까지. 아, 형수님도 오셨네. 동생이란 놈은 슬프긴 한건지, 표정 변화 없이 제 영정사진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아마 동생은 자신이 죽는 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비 놈들은 꽤나 체계적이였고, 맹신적이었다. 5년 전 서울에 있던 작업실을 처분하고 갑자기 섬으로 들어갔던 동생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동생은 저들의 맹신도 중 하나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니 꽤나 씁슬해졌다. 그와 동시에 다시 숨이 막혀 결국 켁켁, 소리를 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아 정말, 저 죽었잖아요. 왜 이런걸 하게 하는거에요. 살짝 눈끝에 맽힌 눈물을 닦아 내고는 천천히 온 사람들을 보다가 형수에게 안겨있는 아이에게 눈이 향했다. 아이는 그 시끄럽고 울음과 절망이 난자한 곳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 너가... 은성은 더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이를 만져보았다. 닿을 리가 없지만, 설령 자신이 만져 잠에서 깰 까봐 그 손짓이 잘게 떨렸다. 밤이라는 천에 별이 수놓아진 날, 태어난 아이. 은성은 새삼 자기가 이 아이를 몹시 보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내가 있잖아. 네 큰 아빠인데. 저기- 아직 어린 아기인 제 조카는 자신이 살아 있었어도 자신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의 상태로썬 손짓도 말도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은성은 하염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말하면 언젠간 전달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 처럼 계속해 말을 내뱉고 있었다. 소리없는 아우성이 멈춘 것은 아기가 잠에서 깨 울음을 터트렸을 때였다. 자고 있던 아기가 갑자기, 돌연 표정을 찌푸리더니 울기 시작한 것이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은성도 놀라 아기를 바라보았다. 은성은 한참을 보다가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럴 리가 없지만, 괜히 자신 때문에 운 것 같기 때문이었다.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난 은성은 멍하니 사람들이 다니는 길 한복판에 서있었다. 휙, 휙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뚫고 지나 각자 갈길을 간다. 자신은 죽어 이리 유령도 뭣도 아닌 상태로 서있는데, 세상은 참으로도 잘 만 돌아간다. 그렇지만 자기가 죽었다고 세상이 돌아가지 않았다면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문제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차라리 이게 나은거다. 장례식에서 울고 있던 사람들도 몇일 후면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 이다. 은성은 그러길 바랬다. 자신이 죽었다고 슬퍼하지 말고 다들 잘 살아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좋아, 다음의 행선지는? 어디로 가야 이 마지막 여흥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미 마음은 행선지를 정해 놨었다. 마지막에 생각나버린 사람이 보고싶었다. 그런데 넌 어디 있을까. 저기요, 신님. 그 녀석은 어디있어요? 이렇게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기면 데려다 주나요?  


그리고, 5분 후 은성은 크게 웃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발을 떼니 도착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집이었다. 생각해보니 편지를 숨겨두었던 곳은 침대 옆 탁상의 비밀 서랍이었다. 서랍 안에 또 서랍이 있는 구조였다. 자신은 그곳에 꽤나 많은 것을 숨겨두었다. 편지를 포함해서, 약간의 돈이랑, 그리고 기사의 초안. 사진들. 가고 싶었던 여행지 소개 전단지들. 영화표, 전시티켓-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 침실에서 누군가 서있는게 보였다. 뒷 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은성은 들리지도 않을 웃음소리를 내보았다. 제 유일한 친구는 자신의 편지를 너무나도 완벽한 상태로- 조금 찢어지거나 망가졌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편지를 읽고 있었다. 얼굴이 보고 싶은데. 임마. 뒤좀 돌아봐. 그렇지만 자신은 유령이다. 말이, 생각이, 마음이 전달 될 리가 없다. 은성은 희미하게 미소를지은 채 뒤 돌아 서있는 사람의 앞으로 갔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자신이 그렇게 보고싶었던 사람은 울고 있었으니까. 



왜 너가 울어.


왜 너가 울고 있어. 야, 너가 울면 내가 좀 많이 미안해지잖아. 


너는 변호사가 되서 이런 일로 울면 어쩌냐


응? 울지마.  

...

..

.



정한아.



자신의 상태가 원망스러워지는 상황이었다. 이 상태로는 위로도, 괜찮다고 토닥여주지도 못한다. 아니, 내가 그럴 자격이 되나 이 녀석한테? 섬을 나온 이후로 자신이 기사를 낸다는 것을 계속 말리던 녀석이였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며 말리던 녀석이었다. 그걸 무시하고 기사를 낸 건 자신인데. 왜 너는 울고있냐, 욕을 하지. 미안해. 이럴려고 한 게 아닌데. 너한테는 내가 얼마나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보였을까. 온갖 생각과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도 들어주질 않을 고백을 하는 기분이었다. 야, 있잖아. 사실은 나는 좀 더 오래 살고 싶었어. 누구든 죽고 싶어 하지 않잖아. 그런데 나는 멍청하게 그렇게 하고 말았어. 야 근데, 나 아까 내 조카 봤거든? 엄청 이쁘더라. 진짜 예뻤어. 저기 있잖아, 그래서 나 이제 조금 죽었다는 것에 후회는 하지 않게 됬어. 야 근데, 야.... 너가 울면 어쩌자는 거야. 저기. 정한아, 나 사실은 너가 기사를 쓰지 말라고 말려줬을 때 많이 고마웠어. 기사를 몇 번이고 썼다 지우면서 네 생각이 나서 참았어. 근데, 그런데 이렇게 됬어. 미안해. 미안하다. 나 어쩌면 좋지?


어쩌면 금은성은 그 순간 만큼은, 울고 있을 지도 모른다. 죽는 순간에도 웃었던 자신은 그 때 만큼은 울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버린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우두커니 너가 이 집을 벗어나기 전까지 계속해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닿지도 않을 거면서 머리를 한번 만져주고는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더 이상 보고 있으면 죽은게 후회가 될까봐. 그게 무서워 계속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은성은 마지막 호흡을 해보았다. 생각해보니 아까 집에 있을 땐, 숨을 쉬고 있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제, 가자. 


그 말과 함께 무언의 온기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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