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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글/빈 둥지와 시간의 기묘한 상관관계

1400km

 

창 밖에서도, 방에서도, 내 안에서도 비가 내렸다.

 

https://youtu.be/8ZtgT9t6KfI

 

 이상기온으로 치부했던 장마는 끝나지 않고 영원한 악몽이 되어 하늘을 뒤엎었다. 마른 땅바닥은 보이지 않는지 오래다. 물을 배출하는 하수구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역류했고 땅이 토해내듯 올라오는 물의 색은 푸르고 어두웠다. 분명 갈색의 흙이 섞인 물이 나와야 정상인데, 이젠 흙을 역류해내지 못할 정도로 많은 물이 들어찬 탓이었다. 

 

 계속되는 비로 마른 먼지가 가득했던 집안은 습하게 변했다. 곰팡이 냄새가 났다. 숲처럼 서재를 뒤덮고 있던 식물들은 햇빛을 보지 못해 모두 죽어버렸다. 축축하게 으깨져 줄기가 갈라지고 이상한 냄새가 난 채로 픽 쓰러져 있는 꼴이 나와 다를 것이 없다. 책들은 모두 뒤틀리고 종이가 울어 읽기가 힘들어졌다.  모든 것들이 물을 머금어 당장이라도 부서지거나 썩거나 물을 토해낼 것 처럼 변해버렸다.

 

 사람이라고 그러지 않을까. 불어있는 손가락과 잔뜩 가라앉아있는 머리카락. 끊나지 않는 비에 인간도 물을 머금어 퉁퉁 불어갔다. 형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정신은 이미 물 속에 나동그라져있는 것 처럼. 한 때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 불리던 물에 의해서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폐에 물이 차고, 턱 끝까지 물이 차올라 고개를 쳐 올리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을 것이며, 그마져도 오래 가지 못한 채 코와 눈을 뒤덮을 정도로 물이 차오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죽겠지. 사인은 익사다. 원인은 이상기후로 인한 지수면의 변화. 모든 인간은 죽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는가? 

 

 일찍이 자신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이 차오르기 전 부터 우리는 이미 죽은 채로 살아가고 있던 것이 아닌가. 비가 와 숨을 쉴 수 없어 죽던, 나 자신을 포기하였기에 이미 죽었던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으면서도 옆에 있는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우리는 살아있다 말할 수 있는가. 그 날, 그 때. 같이 죽자고 말하던 너와 그걸 들은 나는 그 전 부터 여러 번 스스로의 죽음을 맞이하고 받아들였다.

 

먼저 죽을 자신은 있으면서.

 

 비는 이미 전 부터 계속 내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고, 채워지지 않는다고 치부하며 자기 자신을 깍아내리고 흘러가버리게 내버려두며 소실되어가는 것을 방치해두었다. 그것이 가속화된 것 뿐. 인류 멸망의 기로에서 우리는 삶과 희망이 아닌 죽음과 우울을 맛보았다.

 

 모든 지구가 잠겨가는 날. 1400km의 물이 더 늘어나기 전 나는 아마 너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네 발이 마른 육지를 다시 밟고, 숨을 쉬고, 해를 다시 보고, 달의 모양이 어떠했는지 노을은 무슨 색이었는지, 모든 것을 예전처럼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도 나는 찾을 것이다. 

 

나는 그런 존재니까. 나 자신을 포기해 너희를 살리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니까.

 

 

그는 같이 죽자는 말에 비가 온다는 말로 변명하듯 도망쳤다. 몇 백년의 시간이 지나도 같이 살자- 라는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스스로는 타인에게서 희망을 보며 살아가면서 자신에게선 희망을 만들어낼 수 없는 존재라면서. 절대로 같이 살자라는 말은 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변하지 않는 위선적인 인간. 그렇게 자신만 떠나버릴 인간.

 

지구를 뒤덮고 있는 물의 양은 1400km. 이미 그 한도를 지나치게 초과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되뇌이고 되뇌이며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1400km만큼의 물이 더 채워지기 전에, 그 전에-

 

 

 

비는 그치지 않았다.